2026년 9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 영어 33번(빈칸 추론) 지문의 미술사 개념 풀이

μίμησις · mimesis예술은
모방인가?

지문 하나에 그리스 조각, 도기, 화가들의 전설, 그리고 잭슨 폴록이 나온다. 영어 문제를 풀려면 이 개념들이 왜 한 줄에 놓였는지 알아야 한다.

한광여고 미술 · 이대행

폴리클레이토스 도리포로스
폴리클레이토스, 〈도리포로스〉 기원전 440년경 청동 원작의 로마 대리석 모각 ·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33.2026년 9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 영어 영역 The ancient Greeks felt that the visual artist's goal was to copy visual experience. This approach appears in the realism of ancient Greek sculpture and pottery. We must sadly note that, due to the action of time and weather, no paintings from ancient Greek artists exist today. We can only surmise their quality based on tales such as that of Zeuxis and Parhassios, the obvious skill in ancient Greek sculpture, and in drawings that survive on ancient Greek pottery. This definition of art as copying reality has a problem, though. Jackson Pollock, a leader in the New York School of the 1950's, intentionally did not copy existing objects in his art. While painting these works, Pollock and his fellow artists would consciously avoid making marks or passages that resembled recognizable objects. They succeeded at making artwork that did not copy anything, thus demonstrating that the ancient Greek view of art as mimesis — simple copying .

출발점지문이 던진
다섯 개념

밑줄 친 대목이 각각 하나의 미술사 장면이다. 순서대로 짚고 마지막에 빈칸으로 돌아온다.

  1. 1미메시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모방'을 둘러싼 첫 논쟁
  2. 2그리스 조각의 사실주의이집트 → 쿠로스 → 콘트라포스토
  3. 3그리스 도기흑회식과 적회식 — 사라진 회화의 대리인
  4. 4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눈속임의 전설, 그리고 트롱프뢰유
  5. 5잭슨 폴록사진 이후, 베끼지 않는 그림

1 · 미메시스'모방'을 두고
스승과 제자가 갈리다

미메시스(mimesis)는 '흉내 내기'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지문의 "예술 = 시각 경험을 베끼는 것"이라는 정의는 여기서 나왔다. 그런데 이 단어를 처음 이론화한 두 철학자는 정반대 판단을 내렸다.

플라톤『국가』 10권 · 미메시스는 위험하다

플라톤은 참된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의 이데아에만 있다고 봤다. 침대의 이데아는 하나. 목수는 그것을 본떠 나무 침대를 만들고, 화가는 그 나무 침대를 또 본뜬다. 그림은 '모방의 모방', 진리에서 세 단계 떨어진 것이다.

더 나쁜 건 그 방식이다. 화가는 침대의 한쪽 면, 한 시점에서 보이는 겉모습(phainomenon)만 옮긴다. 물속의 막대가 꺾여 보이듯 눈은 속는다 — 그리고 미술은 그 착각을 이용한다. 그래서 그는 이상 국가에서 시인과 화가를 추방하자고 했다.

화가는 사물을 아는 척할 뿐,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시학』 4장 · 미메시스는 본성이다

제자는 스승의 이데아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상은 저 너머가 아니라 사물 안에 있다. 그러니 사물을 잘 관찰해 옮기는 일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흉내 내며 배우고, 흉내 낸 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시체나 흉측한 짐승도 잘 그린 그림으로 보면 기쁘다 — "아, 저건 그것이구나" 하고 알아보는 쾌감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모방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있을 법한 것', 즉 본질을 골라 옮긴다. 미메시스는 단순 복사가 아니라 이해의 방식이다.

모방하는 것은 인간에게 본성이며, 모방된 것에서 모두가 기쁨을 얻는다.

지문과의 연결. 지문은 그리스인의 "예술 = 베끼기"를 한 덩어리로 말하지만, 실제 그리스 안에서도 이미 갈라져 있었다. 플라톤이 보기엔 완벽한 모방일수록 더 큰 거짓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엔 모방은 앎이다. 폴록이 2,400년 뒤에 던진 질문 — "베끼지 않아도 예술인가?" — 는 플라톤의 의심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중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부분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부분 1509–11, 바티칸 — 하늘(이데아)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현실)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인들 스스로도 '베끼기'가 예술의 전부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2 · 그리스 조각의 사실주의돌이 걷기 시작하다 — 콘트라포스토

그리스 조각은 처음엔 이집트를 그대로 베꼈다. 왼발을 내밀고, 주먹을 쥐고, 정면을 본다. 그러다 기원전 480년 무렵 조각가가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자 골반이 기울고 어깨가 반대로 기울며 척추가 S자를 그린다. 이 '맞서 놓기'(contrapposto)가 시각 경험을 베낀다는 목표의 첫 결정적 성과다.

이집트 고왕국 메미와 사부 부부 입상

이집트 · 정면성〈메미와 사부〉 기원전 2575년경, 메트로폴리탄

왼발을 내밀어도 체중은 양발에 균등. 골반·어깨 수평, 등은 돌덩이에 붙어 있다. 걷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서 있는' 자세.

아나비소스 쿠로스

아르카익 쿠로스〈아나비소스 쿠로스〉 기원전 530년경, 아테네

이집트 공식을 그대로 옮겼다. 다만 등판을 떼어내고 나체로 — 근육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미소는 '살아 있음'의 표시.

크리티오스 소년

콘트라포스토 탄생〈크리티오스 소년〉 기원전 480년경 또는 직후, 아크로폴리스

왼다리에 체중, 오른무릎은 풀림. 골반 기울고 머리는 살짝 돌아간다. 최초로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조각.

도리포로스

규범의 완성〈도리포로스〉 기원전 440년경 원작의 로마 모각

폴리클레이토스가 인체 비례를 수치화한 『카논』의 실물 교본. 긴장한 다리 위에 이완된 팔, 이완된 다리 위에 긴장한 팔 — 교차 균형.

로마 모각 문제. 우리가 아는 그리스 걸작 대부분은 청동 원작이 녹여져 사라지고 로마인이 대리석으로 베낀 복제품이다. 도리포로스도 그렇다. 지문이 "회화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한 것처럼 조각도 온전하지 않다 — 그리스 미술은 대부분 '베낀 것을 통해' 본다.

3 · 그리스 도기사라진 회화를 대신하는 그릇

그리스 회화는 벽화·목판이라 남지 않았다. 그래서 구워 굳힌 도기의 그림이 그리스 화가들이 어떻게 그렸는지를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증거다. 기법은 두 단계로 진화한다.

엑세키아스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 흑회식 암포라

흑회식 black-figure · 엑세키아스, 〈주사위 놀이하는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 기원전 540–530년, 바티칸

인물을 검은 실루엣으로 그리고, 세부는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서 새긴다. 망토 무늬 하나하나가 새김선. 정교하지만 선이 딱딱하고 몸의 두께가 잘 안 보인다.

에우프로니오스 사르페돈의 죽음 적회식 크라테르

적회식 red-figure · 에우프로니오스, 〈사르페돈의 죽음〉 기원전 515년경

배경을 검게 칠하고 인물은 흙색 그대로 남긴다. 세부는 새기는 대신 붓으로 그린다 — 굵고 가는 선, 근육의 겹침, 뒤틀린 몸. 회화에 훨씬 가까워졌다. 이 전환이 기원전 530년경, 콘트라포스토 직전이다.

같은 흙, 다른 불 — 검정과 빨강은 어떻게 갈리나

그리스 도기의 검정은 물감이 아니다. 같은 점토를 물에 풀어 아주 곱게 가라앉힌 윗물(슬립)을 붓으로 바른 것뿐이다. 이 고운 슬립은 입자가 촘촘해서 불 속에서 유리처럼 녹아 붙고, 거친 바탕 흙은 그러지 않는다. 그 차이가 색을 가른다.

1 · 산화가마 문을 열어 공기를 넣고 약 800°C까지. 철분이 산소와 만나 전체가 붉게 된다.
2 · 환원문을 막고 젖은 나무를 넣어 산소를 끊는다. 산소를 뺏긴 철분이 전체가 검게 변하고, 고운 슬립 부분은 녹아 유리막이 된다.
3 · 재산화다시 공기를 넣는다. 거친 바탕은 산소를 되찾아 붉게 돌아오지만, 유리막이 된 슬립은 산소가 못 들어가 검정으로 남는다.

그래서 흑회식은 인물에 슬립을 칠하고, 적회식은 배경에 슬립을 칠한다. 칠하는 자리만 바뀐 것인데, 결과는 크게 다르다. 흑회식 화가는 검은 덩어리를 긁어내 선을 만들어야 하니 선이 뻣뻣하고 굵기가 일정하다. 적회식 화가는 붉은 바탕 위에 붓으로 슬립을 그으면 되니 굵고 가늘게, 진하고 옅게 — 붓의 언어가 생긴다. 근육의 겹침, 옷의 투명함, 몸의 비틀림이 이때부터 가능해졌다. 그리고 화가는 이 모든 것을 붉은 진흙 위에 붉은 진흙으로 그렸다. 검정이 되는 건 가마에서 나온 뒤다.

4 · 화가들의 전설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회화가 남지 않았으니 남은 건 이야기다. 로마의 플리니우스(『박물지』 35권)가 전하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최고 화가 둘의 승부.

기준은 단 하나 — 얼마나 감쪽같이 속이는가. 미메시스가 이상이던 시대의 '실력'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제욱시스의 포도

포도를 그리자 새들이 날아와 쪼려 했다. 자연이 속았으니 승리를 확신했다.

파라시오스의 커튼

"이제 커튼을 걷고 그림을 보여주게." 손을 뻗었지만 커튼 자체가 그림이었다.

"나는 새를 속였지만, 자네는 화가를 속였네." — 파라시오스의 승리.

4-1 · 눈속임의 계보트롱프뢰유
trompe-l'œil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 파라시오스의 커튼이 곧 원형이다. 평면 위에 그림자·원근·질감을 쌓아 진짜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회화를 말한다.

그리스 원본은 없지만 그 기법은 로마 저택 벽에 그대로 이어졌다. 창문이 없는 침실 벽에 열린 창과 정원, 발코니, 기둥을 그려 넣었다.

기원전 5세기제욱시스·파라시오스 — 전설
기원전 1세기폼페이·보스코레알레 벽화 — 가짜 건축과 창
17세기바로크 천장화 — 지붕을 뚫고 하늘이 열린 듯
오늘3D 거리 그림, 착시 포토존 — 같은 원리
보스코레알레 빌라 침실 벽화
보스코레알레 P. 판니우스 시니스토르 빌라, 침실 벽화 기원전 50–40년경 · 메트로폴리탄 — 벽에 그린 붉은 기둥 너머로 정원과 정자가 '보인다'. 그리스 무대 배경화(스케노그라피아) 기법의 후손.

5 · 2,400년의 공백을 건너베끼는 일을
기계에 빼앗기다

1839년 다게르가 사진술을 공개했다. 빛이 스스로 세상을 베낀다. 화가가 평생 갈고닦은 '실물처럼'이 몇 분 만에 끝났다.

화가들은 되물었다. 베끼는 게 사진의 몫이면, 그림은 무엇을 해야 하나. 답은 '그림 자체'였다 — 색, 붓질, 평면, 물감. 인상주의 → 세잔 → 입체파 → 추상으로 이어지는 100년이 그 대답이다.

다게르 탕플 대로 1838
루이 다게르, 〈탕플 대로〉 1838 — 현존 최초의 사람이 찍힌 사진. 노출이 길어 움직이는 마차는 사라지고 구두를 닦던 남자만 남았다. 미메시스의 최종 병기이자, 회화를 미메시스에서 풀어준 사건.

5-1 · 1950년, 뉴욕아무것도
베끼지 않기

잭슨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물감을 떨어뜨리고, 흘리고, 뿌렸다. 붓이 캔버스에 닿지 않는다. 그리는 동안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을 닮은 흔적은 의식적으로 피했다 — 지문이 말하는 그대로다.

두 비평가, 두 개의 폴록

1950년대 뉴욕 미술을 이론화한 비평가는 둘이었고, 같은 그림을 두고 정반대 것을 봤다.

해럴드 로젠버그는 1952년 글 「미국의 액션 페인터들」에서 '액션 페인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캔버스는 그림을 그리는 곳이 아니라 행위가 일어나는 무대다. 남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건의 흔적이며, 중요한 건 결과물이 아니라 화가가 몸으로 부딪친 그 순간이다. 이 관점에서 폴록의 캔버스는 무엇을 '재현'한 게 아니라 무언가가 '일어난' 자리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 그는 행위가 아니라 결과물의 형식을 봤다. 그가 보기에 회화의 역사는 회화가 아닌 것 — 이야기, 환영, 조각 같은 입체감 — 을 하나씩 걷어내고 회화만의 것으로 좁혀 온 과정이다. 회화만의 것은 평면 위의 물감이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창문처럼 뚫린 공간을 그리며 이 평면을 숨겨 왔는데, 폴록은 그 평면을 숨기지 않았다. 중심도 가장자리도 없이 화면 전체에 고르게 퍼진 '올오버(all-over)' 구성, 어디를 봐도 앞뒤가 없는 얽힌 선. 그린버그는 이를 미메시스에서 가장 멀리 간 지점, 즉 회화가 가장 순수해진 지점으로 평가했고, 1940년대 후반부터 폴록을 당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화가로 꼽으며 앞장서 옹호했다.

둘의 차이는 결국 지문의 빈칸과 맞닿는다. 로젠버그의 답: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행위다. 그린버그의 답: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매체 자체다. 어느 쪽이든 '베끼기'는 예술의 정의에서 빠졌다.

그래도 예술인가? 아무것도 베끼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예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베끼기'는 예술의 정의가 아니라 예술이 한때 택했던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더 읽을거리 해럴드 로젠버그, 「The American Action Painters」, ARTnews, 1952. 12. 클레멘트 그린버그, 「American-Type Painting」(1955) · 「Modernist Painting」(1960). 한스 나무스의 1950년 사진·영상 — 바닥에 눕힌 캔버스 위를 걸어 다니며 물감을 뿌리는 폴록. '액션'이라는 말이 생긴 시각적 근거. (MoMA·Pollock-Krasner Foundation 사이트) MoMA 〈One: Number 31, 1950〉 작품 페이지의 오디오 해설 — 2.7×5.3m 실물 크기 감각.

잭슨 폴록, 〈One: Number 31, 1950〉 1950 · 유채와 에나멜 · 269.5 × 530.8 cm ·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저작권 보호 작품이라 이 페이지에 싣지 않는다. 미술관 페이지에서 고해상도로 확대해 볼 것 — 화면 어디에도 중심이 없다. MoMA에서 보기 →
잭슨 폴록 (1912–1956) 드리핑, 추상표현주의, 뉴욕 화파 · 이젤도, 붓 자국도, 모델도 없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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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록의 성공은, 예술을 미메시스 — 단순한 모방 — 로 본 고대 그리스의 관점이   임을 보여준다. …demonstrating that the ancient Greek view of art as mimesis — simple copying — ________.

① does not sufficiently define art예술을 충분히 정의하지 못한다

플라톤모방은 진리에서 멀다 — 예술을 의심
그리스 조각가·도공모방을 극한까지 밀어붙임 — 콘트라포스토, 적회식, 눈속임
폴록모방을 버리고도 예술 — 정의가 부족했음을 증명